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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의 시대, 에너지의 위기
2011년 01월 04일 (화) 11:03:57 전력경제 epetimes@epetimes.com
   

우석훈

2.1 연구소 소장

“자원이나 생태를 담당하는 기구들의 권력은 강해지지만 덩치는 작아지는 것, 이런 변화가 앞으로 10년간 우리에게 올 변화가 아닐까? 줄이는 게 남는 것, 그런 ‘스몰 이코노미’의 시대가 과연 올까? 가능성은 농후하다.“

현 정부가 출범할 시점에 민영화에 대한 몇 가지 루머들이 돌았었다.

대표적인 것이 산업은행 민영화 문제였고, 한전에 대한 민영화도 그 안에 포함돼있었다.

현 정권을 만든 사람들이 신봉하는 경제정책은 90년대의 ‘워싱턴 컨센서스’와 미국 네오콘의 정책이다.

이 두 가지를 명확히 구분하기는 쉽지않지만, ‘원자력 확대’와 ‘기후변화협약 완화’ 그리고 기간산업 민영화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네오콘이 에너지 정책이다.

당시에 나는 막상 정권을 잡으면 먹여 살려야 할 사람들이 많아서 서로 가고 싶어하는 한전 사장 자리 같은 걸 놓치기가 아쉬워서 결국 민영화 얘기는 쏙 들어갈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진짜로 그런 이유로 한전 민영화 얘기가 들어갔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번 정권에서 급작스럽게 민영화 얘기가 다시 나올 것 같지는 않다.

현 정권은 지금 종편 선정과 그에 따른 후속 조치만으로도 충분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IMF 경제 위기 이후 분사한 발전회사들을 다시 통합해야 한다는 논의도 일부 있었지만, 아마 말로 끝날 확률이 높다.

세상 일이라는 게 늘 그렇다. 좋은 점이 있으면 나쁜 점이 있고, 장단점이 생기게 마련이다.

정권이 시작하자마자 엄청난 규모로 통합을 했던 LH 공사의 부채가 이자만 하루에도 수십억씩 쌓이는 중이라고 한다.

합병될 때 주도권을 갖기 위해 지나치게 서로 덩치를 불리면서 무리한 사업을 추진한 것이 그 원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자, 눈을 들어 좀 멀리 한 번 내다보자. 앞으로 10년, 그 동안에 어떤 변화가 올 것인가? 세계 경제는 대체적으로 30년을 주기로 경제 체제가 바뀌는 경향이 있다.

보통은 1945년, 전후 복구 과정부터 분석을 시작한다. 파운드화가 기축 통화이던 시절에서 IMF와 세계 은행을 만들면서 달러 체계로 바뀌면서 세상이 한 번 변했다.
그 후에 30년, 대체적으로 1974년의 1차 석유파동까지의 30년을 케인즈의시대 혹은 ‘영광의 30년’이라고 부른다.

냉전 중인 당시에 자본주의 국가들은 사회주의 보다 이 시스템이 얼마나 좋은지 설명을 해야 했고, 자신 안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나, 원조가 필요한 국가에 대해서 정말로 ‘우정과 환대’를 보여주던 시기이기도하다.

경제성은 그 다음 문제였다. 어쨌든 사회주의국가보다 자본주의 블록에 남아있는 것이 얼마나 좋으냐, 이런 것을 설명하려고 했던 시기이다.

1980년부터 30년은 하이에크의 시대라고 부를 수 있고, 미국에서는 레이건주의, 영국에서는 대처주의가 강화됐다.

케인즈 대신 공급경제학이 대세를 이끌었고, 세금을 줄이면 사람들의 소비가 늘어나서 오히려 더 성장률이 높아질 것이라는 얘기들이 힘을 받았다.

게다가 이 체제 경쟁에서 소련은 무너졌고, 더 이상 바깥에는 적이 없는 상황에서 자본의 세계화 경향이 하나의 패턴이 되었다.

자본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외화내빈의 부작용이 생겨났고, 전세계적으로 버블이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를 잡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이렇게 생겨난 버블에 금융 파생상품이 결합하면서 그야말로 ‘잔치는 끝났다’, 또 한 시대의 클라이막스가 이미 지났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셈이다.

2011년 G20을 즈음해서 기축통화에 대한 논의와 토빈세 등 자본 이동에 관한 규제 수단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게 최근의 전언이다.

앞으로 새로운 30년의 시대가 열릴 것인데, 이 흐름이 뭐가 될 것인지가 많은 사람들의 논의 대상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를 세계 경제를 잘 극복하고 있다고 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은데, 그건 전세계적으로 집권층이거나 아니면 자신의 자산 가치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얘기일 경우가 많다.

문제가 되었던 서프 프라임 모기지에서 오피스 모기지 그리고 다시 프라임 모기지로 이어지게 되는 미국의 부동산 버블 문제가 여전히 태풍의 핵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더블 딥’과 같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위기의 일시적 소강 국면을 지나고 있을 뿐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은 듯 싶다.

문제는 여전히 산적해 있는데, 새로운 균형이 어디에서 나타날 것인지, 이게 큰 질문이다. 지금처럼 계속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면 과연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케인즈 시대로 다시 복귀하는 것이 좋다는 게 하나의 명제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만이 그런 흐름의 맨 앞에 서 있고, 그는 정부가 지출을 늘려 고용 문제를 해결하는 게 좋다고 위기 국면에서 계속 주장을 했다.

그리고 달러에 도전하는 위완화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달러를 대체할 통화는 없기 때문에 현 통화체제가 유지되는 것이 좋다고 했다.

1국 중심주의 경향이 강한 전형적인 케인즈 논의인 셈이다.

아마 전세계적으로 ‘마지막 발전경제학자’ 정도로 기록될 것 같은 장하준이 생각하는경제에 대한 큰 틀도 이러한 케인즈주의에 가깝다는 게 내가 가진 이해이다.

지금 진보정당들이 주장하는 복지와 공공성 그리고 여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박근혜가 새로 집어든 복지 역시 크게 보면 케인즈 시대의 복귀라는 흐름 위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격차사회라는, 하이에크의 시대가 만들어놓은 내부의 어두운 면을 차지하고라도, 현재의 통화 체계 자체가 이 시스템을 지탱하기에는 너무 어려워졌다.

최근 은행세 도입과 관련해서 ‘거시건전성’을 한국은행의 주요 목표로 설정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다.

통화를 경제 성장률의 수단으로 쓰던 지난 수 년간의 흐름과 비교해보면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이다.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는 경제 활성화가 아니라 물가 안정이지만, ‘선제적 금리 인하’를 통해서 그렇지 않은 방식으로 중앙은행이 움직였었다.

그것과 비교하면 우리나라 내부의 논의도 이제는 분명 수 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미국에서 파산 위기의 GM을 구한 것은 민영화와 효율성의 논리가 아니라 국영화와 노조의 정치적 압력이었다.

그러나 나는 전면적인 케인즈 시대로 복귀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케인즈 시대의 ‘좋은 얼굴’은 복지국가이지만, 여기에는 ‘나쁜 얼굴’도 있다. ‘대량생산 대량 소비’, 이렇게 세계를 거대한 공장처럼 돌렸던 시대에 생겨난 문제가 바로 자원 문제와 생태 문제이다.

그 시대가 석유파동과 함께 종료했다는 것은 여러 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60~70년대와 같이 물량투입을 하기에는 ‘자연의 제약’이라고 할 수 있는 자원 제약이 너무 강하다.

장기적으로 에너지 가격과 농산물 가격은 주기적으로 폭등을 거듭하면서 상승하게 될 것이다.

공급 속도의 증가율이 수요 속도의 증가율을 잘 따라잡지 못하는 게 한 가지 요소이고, 기준이 되는 달러의 약화와 함께 금, 농산물, 자원 등 대체 관계를 형성하는 상품들의 대체투자가 또 다른 요소이다.

자원 선물시장은 시장 내부로 자원 거래를 흡수하면서 국가가 직접 장기계약하던 시대에 비하면 가격 안정화를 만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투기에 노출시킨 것이 사실이다.

여기에 지구 생태와 지역 생태의 문제가 겹친다. 기후변화협약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지, 아니면 언젠가 지금의 소강국면을 떨쳐버리고 토네이도로 나타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기업은 물론 개개인에게도 지구 생태가 일종의 제약 조건으로 개입해서 경제적 행위를 변경하게 하는 요소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제 누구도 기후변화협약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세게 할 것인가’와 ‘약하게 할 것인가’, 이 두 가지의 선택지만이 놓여있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의 시절로 돌아가기가 어렵다.

자원 문제와 생태 문제,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을 나는 ‘자연’이라고 부르고, 이 두 가지의 특징을 경제적 용어로 말한다면 ‘희소성’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은 본래 희소하고, 무한대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이 그것이 무한대인 것처럼 ‘보이스카웃 경제’로 운영했지만,원래부터 우리는 ‘우주선 경제’였고, 우주로부터 물질을 마음대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앞으로 우리가 만나게 될 새로운 경제는 이러한 속성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희소성의 시대’가 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마치 없는 존재처럼 여겼던 자연이 다시 경제계로 돌아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원이나 생태를 맡은 기구들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그 운용 원칙도 바뀌게 될 것이라는 것을 먼저 생각해볼 수있다.
 
하이에크 시대의 클라이막스를 통과하면서 케인즈의 시대와 달리, 효율성과 경쟁, 민영화 같은것들이 중요한 원리로 등장했다.

마찬가지로 경제적 효율성과 달리, 생태적 효율성 같은 것들이 새로운 원칙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이건 90년대이후한국이 받아들인 ‘환경 논리’와는 조금 층위가 다른 얘기이다.

환경 시대에는 법적기준을 강화하고 그 기준에 맞추거나 대응하는 게 중요한 문제였는데, 생태 효율성은 생태 부하라는 측면에서 조금은 더 근본적인 변화들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이미 북유럽을 중심으로 유럽 국가들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이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경제외교 혹은 환경외교가, 지난 수 십년간 유럽이 먼저 움직여서 틀을짜고, 다른 나라들을 그곳으로 오게 하는 ‘생태 헤게모니’의 구도였다.

변화는 이미 생겨난 셈이다.

단기적으로 본다면, 민영화가 중요했던 시기에서 자원이나 생태를 담당한 기구들에 더 많은 힘이 실리고, 더 적극적인 미션을 요구하는 시대가 바로 희소성의 시대가 갖는 제도적인 의미일 것이다.

한전은 지금까지 개발 시대의 공급기관의 위상을 가졌었다.

여기에 수요관리라는 새로운 사회적 의미가 부여될 것이다.

권력은 강해지지만 덩치는 작아지는 것, 이런 변화가 앞으로 10년간 우리에게 올 변화가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줄이는 게 남는 것, 그런 ‘스몰 이코노미’의 시대가 과연 올까? 가능성은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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