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연구원 국내외협력팀장/국제협력전문가

“내가 우리 동네 코트를 주름잡고 있었을 때, 저 친구는 테니스라켓을 잡고 스윙연습을 했었는데, 지금은 베테랑부 전국 최상위권이 되어서 저 친구를 도저히 당해 내지 못하니, 참.....”.

“인생이 세월을 막지 못하니 그게 바로 청출어람 아니겠습니까?”

지난 주 서울 출장 중 경기 광명철산에 살고 있는 큰 딸 집 근처에 있는 테니스장에서 만난 동년배 테니스고수와 주고받은 이야기다.

테니스를 하게 된 배경이며 직장 일이며, 인생사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그가 나와 나이가 같다는 사실을 알고 되었지만 초면인지라 조심스럽게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30여년 간 은행에서 고위직으로 은퇴하고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와 랠리를 하고 파트너가 되기도 하고 상대가 되어 경기를 하면서 그의 말이 결코 과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랠리도 안정되어 있고 발리도 상당히 잘 한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일련의 기술과 기교가 독학으로 이루어냈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하기야 나 역시 35년여 테니스를 하면서 불과 3개월여 전문 강습을 받았음에도 자칭 타칭 고수급에 속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까.

“어딘지 모르게 이 코트는 허전한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와 달리 테니스장에서는 테니스 잘 치는 사람이 최곤데. 고수 대우를 안 해주니, 하나 둘 이 클럽 저 클럽으로 떠나다 보니 하수들만 많아 테니스 매너도 엉망이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나도 청출어람을 인정하고 고수들한테 잘 보여 한 게임이라도 잡아달라고 부탁하는 세상인데, 하수들은 고수들이 안 잡아주면 뒤 돌아서서 그만 욕을 하고 만다니까요.”

내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이다. 이러한 실상은 나도 그도 인정하는 대부분의 코트에 상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쪽이라는 식물에서 나온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이다. 제자가 스승보다 나을 때 원용되는 고사성어다. 중국 원나라의 저명한 의학자였던 단계 주진형(朱震亨)과 그의 수제자 대사공(戴思恭)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주진형이 치유하지 못한 친구의 복통을 제자인 대사공이 스승의 처방전에 석류피(石榴皮) 3전(錢)을 추가하여 말끔하게 치유한 것을 보고, 주진형이 ‘청출어람’을 읊은 데서 유래한다. 

한 때 창원과 마산 진해 지역의 청장년부 테니스 시합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휩쓸던 친구가 젊은 후배 고수들에게 완패당한 후 중얼거리던 ‘청출어람’을 광명 철산에서 그날 또 다시 듣게 되었다.

테니스는 잘 치는 사람과 못 치는 사람에 대한 차별이 매우 심한 스포츠다. 배드민턴 역시 상수와 하수 사이에 차별이 심하다고 들었다.

탁구나 당구의 경우에는 잘 치는 사람이 못 치는 사람에게 몇 점씩 접어주고도 시합을 하는데, 테니스나 배드민턴은 별로 재미가 없기 때문에 시합 자체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실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시합을 하면 박진감이 있는데, 실력이 쳐지는 사람이 끼이게 되면 게임 자체가 느슨해지고 만다. 나는 이런 실상을 잘 알고 있기에 고수 후배들에게 한 게임 잡아달라고 할 때에는 종종 눈치를 본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 기억하지 못하는 구나” 마음 한 켠으로 서운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어찌하겠는가. 청출어람만 되뇌이기에는 아직도 창창하지 않은가. 청출어람을 내 인생의 2모작을 준비하는 새로운 전환점으로 만들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