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스민이랑 팬더랑 벤자민 분갈이를 해야 할 텐데.” “가까운 화원에 부탁해서 분갈이를 하지 그래.” 작년부터 아내가 나한테 빨리 분갈이를 하지 않으면 시들어버리고 말거라며 채근대면, 화원에 부탁 좀 하지 그러느냐는 상투적인 나의 대답이다.

작년 가을 아내가 평소 자주 이용하는 화원의 사장님께 부탁해 집에 와서 상태가 어떤지 보고 갔지만, 힘만 들고 별로 돈이 될 것 같지 않으니까 지금까지 오지 않고 있다. 금년에도 다른 화원에 부탁을 했지만, 화분을 깨서는 안 된다는 작업요청에 현장 방문은 커녕 전화조차 오지 않는다.

지난 5월 1일 일요일 자스민 옆에서 책을 보다가 가지며 줄기며 잎들이 생기가 없는 것을 보고 하루 종일 마음이 좋지 않아 징검다리 연휴 기간에 하루에 하나씩 분갈이를 하기로 마음을 다지고 연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살아있는 생물에게 지나치게 무관심하고 꽃과 향기만을 즐겨왔던 나의 지나친 이기심이 부끄러워서였다.

다음 날 일찍 퇴근을 하니 아내가 드디어 일을 벌려 놓고 있었다. 화단이래야 아파트에 있는 거라서 그 다지 크지 않지만, 화단 바닥이 흙이며 작은 돌이며 마사토로 온통 뒤범벅이었다. 오후 5시부터 자스민 분갈이를 하느라 아내 혼자 씨름하고 있었던 연유다. 화분이 커서 베란다에서 화단으로 옮기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화분을 밖으로 꺼내기 위해 안에 있는 흙과 작은 돌들을 퍼내느라 상당히 힘들어 했던 것 같다.

7년 여 동안 분갈이를 하지 않았던 까닭에 잔뿌리가 너무 많아, 화분 밖으로 나무를 꺼내기가 너무 힘들어 화분을 깨버리고 싶었으나, 아내의 노력이 가상스러워 끝까지 참고 또 참았다. 결국 아내의 도움을 받아 안전하게 밖으로 꺼내는 데 성공했다.

화분 주동이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어서 나무를 꺼내기가 매우 힘들었는데, 내가 나무를 들어 올리고 아내가 옆에 있는 잔뿌리를 모종 삽으로 정신없이 잘라내는 방법으로 겨우 들어 올린 것이다. 집 안에서 분갈이를 했기에 먼지가 나지 않도록 자주 물을 뿌리다 보니 나무 자체 무게에 흙과 뿌리에 스며든 물 무게까지 더해져 밖으로 꺼내기가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이 고생 저 고생한 끝에 마사와 부엽토를 혼합한 흙으로 다지고 작은 돌을 위에 깔고, 영양제를 위에 뿌리고 물을 주는 것으로 마무리 했다.

다음 날 아내가 어깨가 쑤신다고 말한다. 내가 나무를 들고 있는 동안 내가 힘들까 봐 잔뿌리를 자르느라 정신없이 모종 삽을 위아래로 흔들었기 때문이다. 아내가 그때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집중해서 재빨리 일하는 모습을 지금까지 본 적이 없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아내의 나에 대한 마음 씀씀이를 다시한번 절실히 깨달았다. 아내의 고생을 옻삼계탕 한 그릇으로 대신하고 산책을 함께 하면서 보낸 만 대여섯 시간, 아내와 나는 새로운 기쁨을 맛보았다. 게다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분갈이를 한 자스민을 보니 생기가 도는 것 같아 기쁨이 배가 되었다.

우리 집은 단지 내에서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꽃과 나무를 많이 갖고 있다는 생각이다. 관리법을 잘 몰라서 그 동안 나와 아내는 많은 꽃과 나무와 헤어졌다. 그들은 아내보다 나를 더 원망했으리라 생각한다. 아내는 새순을 갉아먹거나 진액을 빨아먹는 해충들을 퇴치하느라 온갖 정성을 다하는 있는 반면에, 나는 아내가 집을 비웠을 때 고작 물주는 일만 하고 있을 뿐이니까.

나는 이번에 분갈이를 하면서 정말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꽃을 피우기 위해서 겪는 나무의 고통은 여자들의 산통과 거의 비슷할 것이라는 사실을. 나무가 꽃을 피우려면 엄청난 영양분과 수분과 햇볕이 필요할 것이라는 사실을. 분갈이 시기를 놓치면 평생 꽃과 나무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 만 다는 사실을. 꽃과 나무를 대하는 나의 새로운 마음가짐과 더불어서....

(홍명표 한국전기연구원 국내외협력팀장/국제협력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