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고위직에 오르면 저렇게 말이 많아질까.” “하나에서 열까지 시시콜콜 끼어들고, 간섭 안하는 게 없네. 저런데도 부하 직원들이 과연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을까.”

업무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경험하면서 혼자서 중얼거리는 말이다. 나는 28년 여 국제협력관련 업무를 수행해온 덕분에 국내외 각종 회의와 관련된 의전(Protocol)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편이다.

30여년 전, 올챙이 기자시절. 편집국 내 차장들은 물론 올챙이 기자들의 일 거수 일 투족을 간섭한 악명높은 데스크가 있었다.

이를 보고 참다못한 다른 데스크가 “자네는 그렇게 할 일이 없는가, 부하 직원들에게 열심히 하도록 경각심을 주는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말을 많이 하고 간섭하면, 젊은 친구들이 자네 말을 잔소리로 듣게 되고 그들이 창의성을 발휘하지 않은 터이니, 너무 심하게 다루지 말게나”하고 조언하는 것을 들었던 경험이 있다.

언론계를 떠나, 28년여 이공계 정부 출연연구기관에 근무하면서 정말 많은 기관장들을 모셨고 지금도 모시고 있다. 군 생활 기간에는 사단장을 지근거리에서 모신 적이 있다. 그 당시 관구사령관 연대장 포사령관 당번병들과 우리들 아버님(그 당시에는 우리가 모시는 분을 아버님이라 불렀었다)의 그릇의 크기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눈 경험도 있다.

내가 군에서 모신 분은 육군행정학교 교장으로 영전하셨고, 출연 연구기관에서 모신 두 분도 장관으로 영전하셨다. 이 분들은 한결같이 그릇이 크셨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카리스마가 있으시되, 외유내강형이셨고, 부하들이 잘못하면 왜 꾸지람을 들어야 하는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여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셨다는 사실이다.

기관장으로서 해야 할 일과 사단장으로서 해야 할 일을 명확하게 구분하셔서, 부하들이 해도 좋을 일을 결코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해, 남아일언 중천금의 언행을 몸소 보여주셨다는 점이다. 리더로서의 모범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이다.

나는 아랫사람들이 하는 말에 구구절절 토를 달면서, 매사 부정적이고 소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는 고위직을 많이 경험했다. 회의분위기의 좋고 나쁨은 애시당초 그 분들의 관심사가 아니다. 자유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여, 발전적인 아이디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해 내야할 막중한 역할을 수행해야 할 분들이 오히려 창의성을 저해하는 바로 그런 경우 말이다.

그런데도, 그 분들의 공통점은 “왜 참신한 아이디어를 내지 않느냐, 이렇게 입을 다물고 있을 거면 회의를 뭐하려 하느냐,” 는 둥 문제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는데도, 그 본질을 깨닫지 못하는 그런 유형의 고위직을 많이 보아 왔다는 사실이다.

진정한 민주국가 자유사회는 토론문화가 정착될 때 가능하다. 발전하는 기업 발전하는 연구기관, 화목한 가정은 토론문화에 근간을 두고 있다. 미국이 선진국가로서 자부하고, 전 세계를 리드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은 토론문화 때문이라고 단정적으로 말 할 수 있다.

일방적인 지시 문화가 만연한 국가 사회 기업 가정에서 과연 참신한 아이디어가 발굴될 수 있겠는가를 미루어 생각해 보면 그 해답은 자명해지지 않는가.

지위가 높은 사람이 말을 많이 하면, 지위가 낮은 사람들은 이와 반대로 말을 하지 않게 된다. 현실은 정말 복잡다기한 세상이다. 어느 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갖고 있다 해도, 타 분야에서는 문외한일 수 있다. 비록 개인적인 노력에 의해서 수준 높은 전문성을 쌓았다 하더라도 그 보다 높은 전문성을 갖고 있는 아랫사람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큰 틀 안에서 방향을 잡아주고 아주 짧은 조언 한 마디로 아래 사람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을 자극해 고도의 성과를 달성할 수 있도록 유도해 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리더십이다.

인간이 인간일 수밖에 없는 것은 전지전능하지 못하다는 근원적인 한계성에 기인한다. 그런 줄 모르고 지위가 높다 해서 전지전능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만물박사인 것처럼 행동하면, 조직 생활이 복잡해진다.

지위가 높다 해서 말이 많아지면, 천박스럽게 보일 수 있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말을 적게 한다고 해서 무시를 당하거나, 무능하다 업신여기는 일은 결단코 없으리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