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규 한전 전력연구원장

“개방·창조·도전·변화를 경영의 핵심 키워드로 삼아 전력연구원이 보유한 모든 리소스를 전력산업계와 공유하면서 상호 윈윈하는 건전한 R&D 생태계를 구축해 창조경제 실천에 앞장서겠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전력기술 연구의 본산이자 심장격인 한전 전력연구원을 이끄는 최인규 원장의 포부다.

넘치는 열정과 추진력, 선 굵은 업무스타일로 정평이 나 있는 최인규 원장은 지난 해 11월 취임이후 굳게 닫힌 전력연구원의 빗장을 열고 더 큰 가치를 창조해나가는 변신에 나섰다. 

특히 부임 후 유연하고 열정적인 연구문화의 초석을 다지는 데 주력해 온 최 원장은 올 1월 연구원의 새로운 방향성을 대내외에 선포, 주목을 받았다.

신성장동력 발굴로 창조와 융합의 새로운 가치 창출을 위한  ‘Open & Creative R&D First Mover, KEPRI’라는 뉴 비전이 그것이다.

전력연구원이 새롭게 태어나 한 단계 도약하는 전략으로 4C를 설정, 변신의 액셀 패달을 강하게 밟았다.
4C는 개방(Collaboration), 도전(Challenge), 창조(Creative), 변화(Change)의 영문 머리글자를 지칭한다.
먼저, 열린을 의미하는 ‘Collaboration’은 연구원이 보유한 연구 성과와 연구 시설 등을 산학연 및 민간 연구소와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Challenge’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최 원장은 “에너지저장시스템(ESS), 마이크로그리드(MG), 해상풍력 프로젝트 사업단을 구성해 누구보다 먼저 미래를 준비하고 나아가는 선구자적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의지를 표명했다.

연구원의 원초적인 덕목이기도 한 ‘Creative’는 미래성장을 이끌 수 있는 창조문화 확산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에너지 등 산업분야간 경계가 모호하고 ICT기술의 발달로 신산업이 출현하는 등 기술혁신이 빨라지고 있습니다. 이에 연구원은 기술융복합, 에너지신사업, 빅데이터/IoT, Black Swan발굴을 통해 창조기반의 미래기술을 발굴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면서 “에너지밸리 사업인 Campus-Microgrid, 직류배전 등 최첨단 기술 분야의 에너지 신산업 테스트베드 구축에 주도적으로 참여해 회사발전에 이바지하겠다”고 덧붙였다.

나주 빛가람 새시대에 발맞춰 연구원 시스템의 과감한 변화를 추진하는 최 원장의 ‘Change’ 포석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기존 단순 반복적인 행정업무의 시스템화를 통해 연구원의 효율적 운영이 가능하도록 면모를 일신하겠습니다. 더 나아가 조직 전체가 환경변화에 대응하는 적응력을 갖춰 새로운 아젠다를 만들어 내는 리더가 될 것입니다.”

연구원 운영의 핵심 키워드인 4C에서 보듯 변신의 가장 앞자리에는 ‘개방’이 자리한다.
최 원장은 부임이후 전체적인 연구원의 업무를 파악하면서 여러 측면에서 기존에 알고 있는 것보다 연구원이 훨씬 더 많은 성과를 거뒀고 더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걸 새삼 발견했다고 한다.“전력연구원은 61년 발족이후 전력기술 개발의 심장 역할을 수행하며 국가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전력산업의 도약과 발전을 견인하는 밑거름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그같은 성과와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못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같은 분석은 최 원장이 개방의 기치를 내세워 전력연구원의 위상 제고에 나서는 동인을 제공했다. 
세계수준의 시험설비와 능력과 자질이 뛰어난 연구원들이 굉장히 많이 포진해 있다는 자신감도 작용했다.

왜곡하거나 과장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그 때이다.
이는 R&D를 수행하는 모든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외부에 개방하고 공유하는 개방형 연구체제로 확 바꿔나가는 계기가 됐다. 

“업무 특성상 연구원들은 연구하는 부분을 남에게 알려지는 것보다 나 혼자 가지고 싶고 끝까지 활용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생각을 바꿔 열린 마음으로 개방하면 훨씬 더 많은 시너지를 낼 수 있고 윈윈할 수 있다고 독려했습니다.”

기회 있을 때마다 혼자 독자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자동차 업계 혁신의 아이콘인 테슬러처럼 장(場)을 만들 것도 당부한다.

테슬러가 특허기술을 주저없이 공개하는 것도 전기자동차에 대한 장을 만들어 키워나가려는 의도가 숨어있다는 설명도 곁들인다. 

최 원장은 “좋은 기술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기술을 움켜쥐고 공개하지 않으면 장이 만들어질 수 없다”고 단언하고 “전력산업계를 리드해야 하는 전력연구원의 근원적인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서도 기술을 오픈된 장에 펼쳐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최 원장이 연구원들에게 주문하는 것은 크게 두가지다.
먼저 세상을 향해 마음껏 자랑을 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민성 자체가 자랑하는 것을 껄끄러워 하는 습속이 있지만 연구원은 자랑을 해야빛을 발한다는 것이다.

“연구성과물을 자랑해야 남들이 그걸 접하고 판단하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래야 남들로부터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고 필요한 기술이라고 판단하면 연구원에 접촉하려고 할 것입니다. 나 혼자만 아무리 ‘최고의 연구’라고 자부해봐야 큰 의미가 없지요.”

언론매체에 보도하거나 회의·세미나·컨퍼런스에 자주 나가 연구결과를 알리도록 독려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두 번째 주문은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이 돼 달라는 것이다.
“활동영역이 내부에 그치는 직장인과 달리 직업인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 능력을 평가받는 만큼 인센티브가 주어진다”는 최 원장은 “직업인은 가지고 있는 역량과 기술을 알리고 제대로 평가를 받아야 그 가치가 높아진다”고 강조했다. 

“당연한 이치이지만 자랑을 하려면, 또 능력을 갖춘 직업인이 되려면 연구성과물이 좋아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최 원장은 “전력연구원의 변신은 올해 CEO가 제시한 신년화두와 절묘하게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새롭게 많은 변화가 있어야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다’라는 함의를 담은 일신월이(一新月異)의 네 글자는 새로운 것을 연구하고 도전하고 창조해나가는 연구원을 두고 만드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평소 ‘전력연구원이 살아야 한전의 미래가 있다’고 말해 온 CEO께서 연구원장 부임을 앞둔 저에게 대내외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점에 연구원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최 원장은 개방형 R&D체계를 바탕으로 상생의 연구 생태계를 뿌리내리는 것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전력산업을 둘러싼 주체들이 ‘같이’ 성장하고 발전을 일궈내는 상생의 ‘가치’를 실현해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

연구 용역이나 위탁과제를 추진할 때 입찰 시스템에 ‘기계적으로’ 내맡기는 기존 프로세스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나타냈다.

업무 투명성 측면에서는 좋지만 소수 참여기업에게만 기회가 주어져 실제적이고 실질적인 연구 개발과 확산에는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이다.

“연구원이 추진하는 연구들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뜻밖의 반응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며 사전에 외부에 추진 의도와 방향을 널리 알려 관심을 갖도록 하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분석했다.

기술이전이나 공동연구를 원하는 기관이나 업체에게는 기술이전과 연구개발의 기회를 충분히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 최 원장의 견해다.
때문에 연구 수행과제를 외부와 함께 도출해 제안하고 ‘같이’ 연구하고 성과물을 ‘같이’ 공유하고 이전해주는 시스템을 지향한다.

연구수행에 필요한 인력충원도 문호를 활짝 열어 외국의 연구진들을 채용하고 학교나 관련 연구기관 등에서도 위촉 연구원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최 원장은 “‘전력기술 R&D 페스티벌’ 등을 통해 가시화된 연구 성과가 확산·활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방안을 강구해 한전과 전력산업계가 상생발전하는 토대를 굳건히 다져나갈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R&D를 한마디로 규정해달라는 기자의 뜻밖의 질문에는 “미래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이다”라고 곧바로 답했다.

“R&D가 없으면 결코 미래의 먹거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먹거리 창출은 R&D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고 단정지었다.

“현 상황에서도 해야 할 역할과 일이 분명히 있지만 앞으로 뭔가를 시도해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해 희망찬 미래를 기약할 수 있습니다. 그 뭔가를 이뤄내는 데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R&D입니다. R&D를 통하지 않고는 어느 것도 나올 수 없습니다.”

취임 후 100여일이 숨가쁘게 지난 현재, 역동적으로 추진한 가치들이 점차 조직 내에 녹아드는 조짐이 보여 고무적이라고 최 원장은 진단했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만족스럽게 도달할 수 없고 당장 성과를 내놓을 수도 없지만 연구원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변하고 있는 걸 감지하게 됩니다. 연구소 소실장들과 얘기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의 분위기가 부임 초기와는 크게 달라졌다는 것이 그 방증입니다.”

“논의과정이나 업무를 추진하는 과정 속에서 보고를 받거나 대화를 나누다 보면 기존에는 생각해내지 못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나 의견들이 활발하게 개진되고 있다는 걸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특히 개방형 연구체제 변화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고 전력연구원의 위상을 높여야 한다는 당위성에 공감하는 연구원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가 읽히고 차츰 확산되는 것 같아 더욱 희망적이라는 게 최 원장의 판단이다.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달성할 수 없습니다. 생각과 마음가짐이 변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세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꺼번에 둑을 막아 물길을 바꾸는 것보다 같은 생각과 마음가짐을 가지면 물길이 서서히 저절로 바뀔 것으로 확신합니다.”

인터뷰를 끝내며, 최 원장의 구상처럼 전력연구원의 열린 변화가 연구원은 물론이고 전력산업계의 신성장동력을 창출하고 미래비전을 제시해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는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