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가 도입된 이래 현재까지 우리들은 일반적으로 1초에 60번씩 전기의 (+)와 (-) 극성이 바뀌는 교류 전기를 쓰고 있다. 130여 년 전 토머스 에디슨과 니콜라 테슬라의 전기 표준에 관한 논쟁에서 에디슨이 패배한 뒤 니콜라의 교류 송전이 한 세기 넘게 세계적인 추세로 굳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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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산전의 HVDC변환용 변압기 설치작업 모습 |
직류(DC)와 교류(AC) ‘백년 전쟁’
1880년대 후반, 미국에서는 테슬라와 에디슨 사이에 교류(AC)와 직류(DC) 중 어떤 것을 표준 전기 시스템으로 채용할 지에 대한 치열한 주도권 싸움, 이른바 전류전쟁(War of Currents)이 벌어졌다. 당시로서는 에디슨이 주장한 방식은 120V의 직류로 전기를 생산해 전압을 높이기가 어려운 반면 테슬라의 교류 방식은 상대적으로 전압을 높이기가 쉬웠다.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장을 밝힐 25만개의 전구를 감당할 기술로 최종적으로 교류전기가 첫 승리를 거둔 이후, 1896년 나이아가라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42km 떨어진 도시 버팔로로 수송하는 경쟁에서도 다시 교류의 승리로 귀결되면서 교류 전성시대가 열리게 됐다.
하지만 그로부터 100여 년 후, 교류에 밀려 한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직류가 다시 부상하게 된다. 신재생에너지원과 분산전원, 에너지저장장치 등의 DC 전원(電源)이 급속 증가한 데다 정보화 사회가 빠른 속도로 확대되면서 직류전원을 소비하는 정보통신 부하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교류는 변압기라는 설비를 이용해 손쉽게 전압을 바꿔 먼 거리로 보낼 수 있지만 전력 전송 손실이 크고 지하 매설 (지중화)로 인해 거리가 제한된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항상 일정한 전압과 극성을 가지는 직류 송전은 전력손실이 적고, 지하 또는 해저 매설에 따른 거리 제한이 없다. 또 사고가 났을 경우 손쉽게 전력망을 분리해 운영할 수 있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직류는 전압을 바꾸기 위한 특수한 반도체로 구성되는 전력 변환 설비가 필요해 송전설비 비용이 고가라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직류송전의 핵심인 반도체 기술은 물론 정보통신 및 전력 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고 있어 에디슨이 주장했던 직류 송전이 현실화되고 있다.
왜 HVDC 기술인가?
HVDC(초고압직류송전 ; High Voltage Direct Current)이란 발전소에서 생산되는 고압의 교류전력을 전력 변환기를 이용해 고압의 직류전력으로 변환시켜 송전한 후 원하는 수전(受電) 지역에서 다시 전력 변환기를 이용해 교류전력으로 재 변환시켜 전력을 공급하는 방식이다. 기존 고전압 교류전력(HVAC) 전송방식에서 고전압 직류전력(HVDC) 전송방식으로 변경함으로써, 전력운용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확보해 국가적 대정전 사태 사전 방지와 전력시장의 수급 안정화를 위한 핵심기술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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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HVDC실증단지 한림변전소 전경 |
HVDC의 장점
직류전압은 교류전압의 최대값에 비해 크기가 약 70%에 불과해 기기의 절연이 용이하고, 전압이 낮기 때문에 각 기기에 설치돼 있는 절연체의 수량 및 철탑의 높이를 줄일 수 있다.
동일한 전력을 보내는 경우 교류방식에 비해 직류방식이 송전 손실이 적기 때문에 송전 효율이 좋아진다.
전선의 사용량을 줄일 수 있고, 송전선로의 면적을 줄일 수 있어 효과적으로 송전할 수 있다. 특히 직류가 교류에 비해 2배 이상의 전류를 흘릴 수 있게 된다.
전압이나 주파수가 다른 두 교류 계통 사이를 연결하여 계통의 안정도를 향상 시킬 수 있고 교류계통 고장 시 인접 연결 계통으로 사고가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2003년 미국 동부에서 발생했던 대규모 정전 사태는 HVDC를 사용하게 되면 한쪽 편의 사고가 다른 편으로 전파 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게 된다.
송전거리에 대한 제약이 없고, 특히 450km가 넘는 육지 전력전송이나 40km가 넘는 해저를 통한 전력전송에 있어서 교류송전에 비해 직류송전 방식이 건설비가 저렴하다. 중국, 인도 등지는 발전소와 전기 사용자 사이의 거리가 1,000km 이상이 되기 때문에 HVDC 보급이 급속하게 확장되고 있는 상황이다.
교류송전 방식에 비해 송전선로의 전자파 발생이 줄어 통신선 및 각종 기기에 발생하는 오작동 및 잡음을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최근 들어 심각성이 대두되고 있는 송전선 건설 문제의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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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HVC실증단지 설비 |
직류 기술이 가져다 줄 새로운 미래
교류는 100여 년 전 에디슨이 발명한 직류보다 변압기로 손쉽게 변환되기 때문에 오랫동안 사용돼 왔다. 하지만 전력을 안정화시키기가 더 복잡하고, 전력 전송 손실이 큰 데다 지하 매설에 따른 거리 제한이라는 뚜렷한 단점이 있다.
일상생활에서 이용되는 컴퓨터나 일반 가전부터 산업용 인버터와 향후 대량 보급될 전기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직류를 이용할 때, 더 효율적이고 안정화시키기 쉽다. 태양광, 풍력, 연료전지 등 다양한 신재생에너지원에도 직류가 더 적합하고 효율적이다.
따라서 현재의 전력시스템을 교류 중심에서 직류 중심으로 바꾸고자 하는 노력이 송전, 배전, 그리고 각 건물과 가정 내부 시스템에까지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직류 중심의 전력시스템이 일반화되면 미래 사회에 많은 변화와 새로운 발전 모델이 생겨날 것으로 기대된다.
국내 HVDC 사업 및 연구개발 현황
현재 세계 HVDC 시장은 지멘스와 ABB, 알스톰 등 3대 글로벌 기업이 대부분 장악하고 있다. 이들 회사는 이미 40~50년 전부터 HVDC 기술을 상용해 세계 각국에 시스템을 구축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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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산전_HVDC 싸이리스터밸브 |
우리나라는 알스톰 기술을 도입해 지난 1997년 진도-제주간 300MW급 제 1 HVDC 구축에 이어 2014년 양방향 전력송전이 가능한 400MW급 제 2 HVDC를 구축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9년 한국전력과 LS산전(변환기술), LS전선(해저케이블), 대한전선(케이블)이 공동으로 국산화 기술개발을 위한 합동연구에 착수하며 HVDC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이어 2013년에는 한국전력과 알스톰이 HVDC 기술협력을 위한 조인트벤처 KAPES를 설립하고, 핵심기술 이전 사업자로 LS산전을 선정하며 사업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KAPES는 이듬해인 2014년 총 사업비 3,180억 원 규모의 충남 북당진과 평택 고덕 간 HVDC 구축을 위한 계약을 체결, 2018년 완공을 목표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개발 측면에서도 성과가 있었다. 전기연구원과 LS산전은 2013년부터 직류 전력망을 구성하는 데 있어 가증 큰 기술적 장애로 꼽히는 직류차단기 개발과 관련 기술 확보를 위해 공동연구센터를 운영, 최근 전기연구원이 개발한 직류차단 관련 기술을 LS산전에 이전한 바 있다. 전기연구원은 현재 배전급 전압의 직류차단기 개발에 성공했으며 다음 단계로 송전급 전압의 직류차단기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LS산전은 이에 앞선 2011년 총 1,100억 원을 투자해 부품 입고부터 성능검사, 조립, 시험, 시운전까지 가능한 HVDC 전용공장을 부산 진해 경제자유구역 화전산업단지에 부지 1만 1,157여㎡(3,375평), 건축 연면적 5,910㎡(1,788평) 규모로 건설, 핵심설비 국산화의 토대를 마련했다.
이어 같은 해 ±80kV HVDC 변환용 변압기를 성공적으로 개발 완료하고 최종 시험을 거쳐 최근 한국전력공사와 협동연구로 진행하고 있는 HVDC 실증단지인 제주 금악변환소에 성공적으로 설치 완료했다.
이후 ±250kV / 200MW 시스템까지 적용이 가능한 싸이리스터 밸브, C&P(Control & Protection) 시스템 플랫폼을 차례로 국산화 시키는 등 HVDC 시스템의 핵심 부품 개발을 모두 완료하고 지난해 제주 HVDC 실증단지에 Pilot 시스템에 대한 실증 운전도 성공적으로 마쳤다.
LS산전은 이와 같은 HVDC 핵심기기 국산화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 10월 ‘2012년도 대한전기학회 전력기술부문회 정기총회 및 추계학술대회’에서 기술상을, 12월에는 경북대에서 개최된 ‘2012년도 전력전자학회 정기총회’에서 HVDC 싸이리스터 밸브 기술로 ‘올해의 전력전자제품상’, ‘기술상’, ‘감사패’ 등 총 3개 부문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시장 전망과 시사점
현재 전력망은 교류(AC)가 주축을 이루고 일부에서 직류(DC) 망이 이용되고 있다. 향후 차세대 전력망은 교류와 직류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형태로 발전할 것으로 예측된다. 중첩된 직류 전력망은 나라와 대륙을 연계하고 전력 부하 균형을 조정하며, 기존 교류 송전망을 보강하게 된다. 직류 전력망은 그리드 신뢰성 및 기존 교류 네트워트의 용량 또한 향상시킨다.
현재 약 30조원 규모인 세계 HVDC 시장은 ABB(50%), 지멘스(30%), 알스톰(15%) 등 3대 글로벌 기업이 지난 50년간 독점적 지위를 누려왔다.
이 시장은 오는 2020년 730억 달러(약 81조 원), 2030년 1,430억 달러(약 159조 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6월 현재, 1달러 = 1,117원 기준)
▲장거리 송전 증가(중국, 인도, 남미) ▲해상풍력 증가(유럽) ▲국가간 계통 연계 증가(유럽) ▲계통 안정화 수요 증대 및 스마트그리드 활성화(범 세계적) 등으로 인해 지속적인 성장분야로 전망된다.
다양한 전력기기 기술 및 Turn-key 솔루션 사업역량을 확보할 수 있는 시장이나, 고도의 기술력을 요하는 만큼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사업이다.
물론, 교류시스템를 당장 직류로 변화시키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미 구축된 많은 전력 간접시설을 교체하기 위한 비용과 시간은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특장점을 가진 직류가 대세라는 점은 변함이 없으며, 많은 세계 유수의 연구자와 기업들이 직류 기술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직류 기술의 흐름에서 뒤처지지 않고 성공적인 기술개발의 성공적인 결실을 위해서는 국제 표준화에 적극적인 참여와 정부의 개발의지 그리고 산학연 연구협력이 보다 요구되고 있다.
현재 정부도 창조경제 산업엔진 프로젝트로 직류송전기술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직류송전은 초고압 케이블, 반도체 및 고도의 통신 기술 외에 많은 부품들이 집약된 기술로서 원거리 송전, 국가간 전력연계 및 대규모 신재생 에너지의 활용에 필수적이다. 교류를 대신해서 전세계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는 직류송전기술은 전력산업의 새로운 시장을 열고 국가 성장 먹거리로 거듭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