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걸 한전 사장

공직을 떠나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전의 CEO로 변신한 이원걸 사장은 몸이 열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다.

한전 사장의 일정을 관리하는 비서실은 10분 단위로 일정을 체크할 정도로 스케쥴이 빡빡하다.

더욱이 그가 추구하는 한전의 경영 스팩트럼이 전 세계로 확장되면서 한전과 손잡고 사업을 추진하려는 해외의 에너지 유력자등 내방객의 발길이 더욱 잦아졌다.

이 사장은 정부에 있을 때와 달리 ‘머리보다 몸이 바쁘다’고 표현했다.

큰 맥을 짚어 도하면서도 필요한 요소 요소를 직접 챙겨나가면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는 게 이 사장에 대한 한전 내부의 평가다.

이 사장이 국내외 안팎의 에너지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국내 2위의 기업집단이자 공기업의 간판격인 한전의 신임 CEO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지만 그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는 게 옳은 분석일 것이다.

에너지 차관 시절,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매번 밀렸던 에너지 정책을 범정부적 차원의 큰 틀에서 제자리를 잡아 올곧게 추진되는 일대 전환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키운다.

특히 초유의 고유가를 이겨내고 활발한 자원 외교의 중심에서 굵직 굵직한 결과물을 만들어 낸 그의 저력이 또다시 한전에서 ‘실력 발휘’될 것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우리나라 전력수요는 90년부터 99년까지 매년 10.2%씩 증가했기 때문에 기본적인 판매수익이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2자릿수 증가율은 2000년도 들어 6%대로 떨어졌고 2007년부터는 4%대의 낮은 증가율을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장기전력수급계획은 2010년 이후부터 2019년까지는 대략 1%대의 증가세를 보이다 그 이후부터는 1% 미만의 증가율을 보일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전체산업구조도 장치산업, 중화학공업 등 굴뚝산업의 비중이 낮아지는 대신 신지식산업 비중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신지식산업은 에너지 소비가 적어 전력수요 증가를 기대하기 힘든 현실입니다. 여기에다 전력산업도 IT화, 첨단화, 무인화되면서 인력이 점차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자회사를 포함 5만여명의 직원을 생각하고 챙겨야 하는 한전 사장의 입장에서 보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한전이 새로운 먹거리, 성장의 원동력을 찾아 뛰어야 하는 것은 필연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사장은 지난 14일 한전 사장 접견실에서 열린 에너지 전문지 편집국장 간담회에서 경영 화두를 ‘신성장 동력’으로 정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새로운 신성장 동력 찾기’가 때 늦은 감은 있지만 ‘시작이 반이지 않느냐’는 말로 자신감을 피력했다.

이 사장은 신성장 동력의 첫 번째 타겟을 해외사업으로 정했다.

이 사장은 취임 직후 KOICA를 통해 60여개 국가의 대사들에게 경쟁력있는 한전의 기술 수준을 알리고 상호 협력을 당부하는 장문의 서신을 보내 호응을 이끌어 냈다.
그중 가장 적극성을 보인 러시아 측과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산자부 차관 시절 자원 외교의 최전방에 서서 세계 곳곳을 누볐던 그는 “자원은 풍부하지만 전력인프라가 열악한 많은 국가들이 우리 전력산업의 진출과 도움을 요청해 인상 깊었다”고 술회했다.

“특히 산자부 해외사업단장 자격으로 아제르바이잔을 방문했을 때 그곳 전력회사 사장과 담소를 나눈 적이 있는 데, 한국의 송배전손실률이 4%대라는 사실을 들려주자 놀라움을 금치못하더군요”

“당시 아제르바이잔의 송배전손실률이 40%대인 것을 감안하면 놀라는 것도 당연했을 것”이라며 이 사장은 웃음을 지었다.

“자원은 풍부하지만 전력품질이 수준이 극히 취약한 이들 국가들은 한전과 의 협력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전하며 자원개발과 전력산업을 접목해 이들 나라를 공략할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이 사장이 추진하는 해외사업은  ‘독자 노선’을 걸었던 종전 사업 형태를 탈피, 에너지관련 사업주체들과 연계하는 협력의 큰 틀에서 전개되고 있다는 것에서 눈길을 끈다.

 “지금까지 한전은 자체사업 위주로 독자적인 해외사업을 펼쳤으나 이제는 상대국가가 원하는 다양한 사업을 총체적으로 지원하는 ‘패키지딜’ 접근방식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최근 에너지공기업 CEO클럽을 결성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모임을 주도한 이 사장은 “에너지 관련 5개 공기업이 손발을 맞추면 사업의 시너지 효과가 배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전자회사와도 협력의 큰 테두리 내에서 ‘작품’을 만들어 낼 방침이라고 언급했다.

한전은 현재 파키스탄을 비롯 방글라데시, 미얀마, 나이지리아 등 세계 각국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

▲ 이원걸 한전 사장

이 사장은 해외 진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면서 가장 애로를 느끼는 것으로  전문 인력의 부족을 꼽았다.

“해외 현지사정에 밝고 글로벌 마인드로 무장한 실력있는 인재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하는 이 사장은 “체계적으로 훈련하고 교육시켜 인재를 양성하는 종합적인 마스터플랜을 세워 시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사장이 추구하는 두 번째 경영 키워드는 기술개발이다.

“한전은 기술개발 부문에 3200억 정도의 많은 투자가 이뤄지고 있지만 예산 비중이 큰 것에 비해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지 않다”고 진단한 이 사장은 “이제는 파급효과가 크고 세계시장을 주도할 전략적 기술개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5년이나 ~10년 뒤의 먹거리를 제공할 독창적이고, 중장기적인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내부 업무보고 때 기술개발 과제의 세세한 내용까지 꿰고 있어 담당 임직원들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는 후문. 이 사장은 R&D에 깊은 관심을 갖고 개발과정을 직접 챙겨나가겠다고 밝혀 직원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이 사장은 조만간 내부 검토와 외부 전문가들과의 토론을 거쳐 중장기적으로 추진할 8개 기술과제를 뽑아 집중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뜻을 비쳤다.

범용기술의 업크레이드 부문까지 한전이 직접 예산을 들여 지원하는 것보다 구매정책을 통해 업계의 개발을 촉진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게 이 사장의 지론이다.

이 사장은 “특화되지 않은 부문까지 나눠주기식으로 지원하는 것으로는 기술개발의 소기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며 “ 업체가 서로 경쟁하도록 유도하고 이를 통해 업그레이드된 제품이 나오면 이를 우선적으로 구매하는 것이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결론적으로 R&D 예산은 차세대 먹거리를 창출하는 특화된 기술개발 분야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게 이 사장이 밝힌 R&D 정책의 요체다.

이 사장이 밝힌 성장 동력의 세 번째 키워드는 사업영역 확대다.

한전의 시스템을 이용해 새로운 이윤을 창출하거나 한전 아트센터등 자체 보유 시설과 장비 등을 활용, 수익을 올리는 사업영역 확대 방안을 강구한다는 것이다.

“현재 실무진들이 아이디어를 도출하고 내부적으로 다각도의 논의를 진행중”이라는 이 사장은 “늦어도 이달 안에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만들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이 사장은 한전의 장단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시스템이 잘 되어 있고  각 분야별로는 우수하지만 전체를 아우르는 조정 능력은 떨어진다고 진단했다.

“조직이 크다보니 나타날 수 있는 약점이겠지만 서로 다른 분야가 충돌할 때 이를 빠른 시간 내에 조정해야 하는데, 이게 좀 약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부적으로 조정 역할과 기능이 작동하도록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습니다”

독립사업부제 출범에 대해서는 “취임 직후 사업소를 순시하며 관계자들과 미팅을 가져 본 결과 여론도 좋고 진도도 빠르게 진행되는 등 모든 면에서 순조롭다는 생각이 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다만, 현장에서 근무하는 하위직 직원들은 사업부제 이후에도 맡고 있는 업무가 크게 달라지지 않아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있지만 간부들의 경우는 사업부제의 장점을 살려 좋은 아이디어들이 도출되고 전파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사장은 독립사업부제가 앞으로 한전 운영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으로 내다봤다.

직군 간 교차보직에 대해서는 “현재 송변전 1·2직군 20명을 대상으로 교차보직을 실시하고 있는데, 장점이 꽤 많아 보인다”며 “시범운영 결과를 분석해서 확대여부를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전의 내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78%가 본사의 지방이전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힌 이 사장은 “한전이 가장 먼저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해 다른 공기업의 모범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대담:김홍섭 국장>
<정리:조영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