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전기 요금 인상을 시사하는 ‘변죽’만 울릴 것이 아니라 과감하게 요금을 올리는 결단력과 국민을 설득하고 에너지 위기를 함께 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장바구니 물가를 걱정하는 국민의 눈치를 보며 주저주저하다 때를 놓쳐 더 큰 부담을 국민에게 안겨줄게 명확하다. 국민이 오일쇼크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전기요금 인상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을 때 인상을 단행하는 것이 최적의 선택이다. 더 이상 전기요금 현실화를 미루다가는 인플레이션 심리를 부추겨 자칫 더 큰 ‘후 폭풍’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앞선다. 최근 정부의 신뢰도가 떨어져 지지도가 급락한 요인중의 하나가 현실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하고 ‘뒷북’만 남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요금을 동결하고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에 8천여억 원의 국가재정을 지원키로 결정한 것은 한전의 현금 흐름에 다소 도움을 주겠지만 이는 ‘임시방편’일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전기요금을 무작정 묶어두고 덮어 두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정부가 오일쇼크를 줄이고 민생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임시방편의 단기 처방을 취했지만 전기 요금을 현실화하지 않고는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다. 임시방편은 소기의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어렵고 꼬여있는 사안일수록 정도(正道)로 가는 것이 해법이다. 에너지 가격이 비싸지면 소비자들이 제 때에 비싼 값을 물도록 하는 에너지 산업구조를 갖추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 우선이다.

전기요금이 물가 억제에 발목이 잡혀 있는 사이 시장에서는 이상 현상들이 하나 둘 불거지고 있다. 최근 액화석유가스(LPG) 가격이 인상되면서 전기 프라이팬과 전기 바비큐 그릴 등 주방 전기제품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고 한다. 전기요금은 오르지 않은 만큼 가스를 이용해 요리하는 것 보다 전기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부담이 덜하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싼 전력을 이용한 난방사례도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화훼 축산농가 등에서도 농사용 경유가 농사용 전기요금보다 2배가량 비싸 앞다퉈 전기난방으로 바꾸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전기요금 동결은 산업계와 소비자에게 잘못된 신호를 줘 비용발생구조와 무관한 전기소비 행위를 촉발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규제로 인한 전기요금 동결은 에너지의 합리적인 소비를 가로막아 에너지에 관한한 취약한 구조를 지닌 국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전력은 전환 에너지라 열효율이 낮을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이 싸기 때문에 전기 과소비를 부추기는 행태는 비정상적이다. 효율이 낮은 전기를 가스 등유 등의 대체제로 사용하는 최근의 수요 이동도 아이러니다. 전력을 이용한 난방이 급격히 늘어 국가에 손실을 끼치는 액수가 무려 년간 9천억원에 달하는 실정이다. 에너원간의 과도한 가격 격차로 인해 2차 에너지인 전력 소비를 부채질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에너지원간의 공정경쟁이 이뤄지지 않아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선택하지 못하는 구조를 더 이상 방치하면 안된다.

정부가 그동안 견지해온 저가 전기요금 정책은 반드시 변화가 필요하다. 82년 한전이 공사로 전환한 이후 현재까지 소비자 물가는 207.0% 오른 것에 비해 전기요금은 5.5% 상승하는데 그쳤다. 소비자 물가 상승요인을 감안할 경우 전기요금의 실질 조정률은 마이너스 65.6% 인하된 수치다. 이로 인해 전기 과소비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1인당 전력소비량은 이미 일본을 추월했다. GDP대비 전력 소비량도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보다 월등히 높다. 값싼 전기요금은 국가 경제에 큰 도움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저에너지소비형 산업구조로 전환하는 발목을 잡는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래도 되는 지 의문이다. 

물가에 매달리다 국가의 자산이자 국가 경제의 근간인 한전의 부실화를 초래하는 우(愚)를 범할 수 있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금과옥조인 ‘성장’의 잠재력을 훼손할 우려가 커 보인다. 한전은 연료가격이 높아져 구입전력비가 늘어도 전기요금을 제때 올리지 못해 지난 2002년 이후 당기순이익이 하락세로 돌아섰다. 한전의 투자보수율 3.5%는 무위험이자율보다 낮은 수준이다. 지난해의 경우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도 지불하지 못하는 잠재적 부실 상태다. 올 들어 1분기에 영업 손실이 발생해 긴축경영에 돌입한 상태다. 한전이 긴축 기조로 들어서자 관련업체 1만2천여개사가 극심한 경영난을 겪어 국가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다. 고용창출 효과가 타 산업보다 월등히 크고 국가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전력산업계에 성장의 기운을 불어넣는 것은 전기요금을 현실화시켜 전력설비에 대한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선결조건이다.

난방 설비 교체는 대체적으로 비수기인 7월에서 9월 사이에 이뤄지는데 지금 가격 시그널을 주지 못하면 전기 난방 수요를 억제할 수 없다. 난방 설비는 시설투자가 따르기 때문에 한 번 수요가 늘어나면 왜곡된 소비 행태를 돌려놓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지금이 전기 요금 인상의 적기다. 요금 인상이 지연될수록 요금인상폭이 커져 소비자 부담이 가중될 것이며 이는 시장에 큰 충격파로 작용할 것이다.

물가는 신성불가침한 영역이 아니며 타부시해서도 안된다. 국민이 전기요금 올리는 것을 싫어한다고 해서 다른 정책이나 수단을 동원해 문제를 봉합하고 우회해서 푸는 것은 문제를 더 꼬이게 할 뿐이다. 전기요금을 올려야 하는 ‘필요충분 조건’이 이미 갖춰졌다. 물가 안정 없는 성장은 기대할 수 없지만 비효율을 양산하는 구조 하에서는 성장도 보장할 수 없다. 정책 결단의 성공 여부는 타이밍이 좌우한다. 물가를 잡아야 하는 정부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이런 때 일수록 과감한 결단이 요구된다. 유가가 급등하는 오일쇼크에 대해 가격결정권을 쥐고 있는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고 재정 지출을 확대하는 충격 완화 정책은 작금의 경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