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전기요금이 4.5% 인상됐다. ‘인상과 동결’사이를 오가며 갈팡질팡하던 정부가 인상폭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요금 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물가 상승에 따른 서민경제 압박을 우려해 조치를 미뤄온 정부가 결국 소폭이지만 요금을 올린 것은 요금 인상 요인을 일부라도 해소하지 않으면 누적 인상폭이 커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더 큰 부담을 안겨줄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듯 싶다. 산업용과 일반용 고압 수용가의 요금을 올리고 경제 여건이 어려운 서민층 전기요금을 묶어둔 것도 물가와 민생을 고려한 흔적이다.

미국 발 금융위기의 파고가 거세 각종 경기 지표가 최악 수준인데다 실물경제 마져 얼어붙은 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자칫 뒤로 미뤄질 수 있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지식경제부가 청와대를 설득해 조치를 이끌어낸 것은 그나마 다행스럽다. 그러나 추가적으로 10.5%의 요금 인상분을 안고 가야하는 한전의 사정을 놓고 보면 이번 조치가 턱 없이 부족한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이번 조치로 한전은 추가 수익이 올해 1890억원, 내년에는 1조36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되지만 여전히 발전연료 상승으로 큰 손실을 상쇄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정부의 전기요금 인상요율이 당초 기대와 달리 대폭 하향 조정되면서 한전의 경영악화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내년도 예산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전기요금 인상폭이 낮아 순손실이 커지는 여건에서 긴축예산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미 한전은 올 초부터 세차례에 걸쳐 총 1조2000억원에 달하는 예산을 거둬들였다. 한전의 긴축 경영은 설비투자 축소로 이어져 한전의 투자 규모에 따라 명암이 갈리는 전기업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전기 관련 몇몇 기업은 경영을 포기했고 기업 활동을 접으려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 단순 현상으로 보기에는 문제의 심각성이 높아 보인다. 한계 기업이 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겠지만 문제는 건실한 기업이 함께 시장에서 물러나는 것이 문제다. 기술은 하루 아침에 뚝딱거려 만들어지지 않으며 기술 집약적인 전기관련 기업은 손쉽게 만들어지지 질 수도 없다. 국가의 미래의 성장 동력을 이끌 이들 기업이 왜곡된 전기요금의 희생양이 돼 축적한 기술과 노하우가 하루아침에 사장된다면 국가 발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한전의 예산 편성도 그러한 측면에서 고려되고 감안돼야 한다.

수면 아래 가라 앉아 있지만 전력공급의 안정성 측면도 쉽게 넘길 일이 아니다. 발전 분할이후 개별 기업의 순익에만 매달려 전국에 흩어져 있는 발전소들이 점차 멍들어 가고 있다는 것은 전력계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멍들어 있는 발전소와 송변전 배전계통을 계속 방치하다가는 화(禍)를 부른다. 계통 보강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전력공급의 안정성은 담보할 수 없다. 전력설비 특성상 계통의 취약함은 더 큰 화를 초래하고 그 결과는 곧바로 국가 경제 전체에 데미지를 입힐 것이다. 

어려울 수록 정도(正道)로 가고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다. 어렵다고 우회전한다고 해서 종착점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여건에 따라 발걸음이 늦어지더라도 가는 방향이 맞다면 공동선(共同善)은 지켜져야 한다. 현 시점에서 전기요금 인상과 연료비 연동제를 논의하는 것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덮어두고 넘어가는 것은 무책임하다.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 한전 경영으로는 국가의 미래가 없다. 정치권과 정부가 마음을 비우고 전기요금을 다시 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