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적자에 봉착한 한전등 전력그룹사가 원가 절감에 ‘올인’하면서 크고 작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에 반해 부작용을 함께 내재하고 있어 걱정이 앞선다. 적자를 메우고 이익을 내기위한 원가 절감 방안이 안전성이나 투자를 간과하는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키는 단초로 작용하는 정황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손쉽게 채택되는 원가절감 방법이 당장은 경영실적으로 나타나겠지만 이른 시일 내에 걷잡을 수 없는 치명적 후유증을 불러온다는 인식의 전환이 재삼 필요한 때다. 

전력그룹사의 뼈를 깎는 원가 절감 필요성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한전은 지난해 사상 최대폭인 2조 9,000억원의 적자를 내 올 주총에서 사상 최초로 배당을 하지 못했다. 적자로 돌아선 한전은 운영자금을 마련하려고 사채 발행을 확대, 부채비율이 49.1%에서 63.3%까지 높아졌다. 올해 들어서도 1분기 매출액이 8조3,591억원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4.3% 증가했지만 영업손실과 당기순손실이 각각 1조 7,638억원, 8,82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적자규모를 2조원대로 예상했던 한전은 1분기 적자 규모가 예상보다 큰데다 판매량은 줄고 미체납 건수가 늘어난 탓에 돈이 제대로 걷히지 않아 고민이 깊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경영혁신 성과가 낮은 사업소장은 대기발령할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퍼지는 한전본사나 각 일선 사업소는 경쟁적으로 이익을 늘리고 비용을 줄이는 전략을 짜고 시행하느라 몸살을 앓고 있다. 그야말로 마른 수건을 짜고 또 짜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긍정적인 평가 이면에는 정작 할 것을 덮고 원가 절감의 숫자에 매몰되는 ‘복지부동 행태’도 나타나 우려를 자아낸다. 기술회사의 특성을 살려 효율 높은 기자재나 신기술 공법을 도입해 원가를 줄이는 시스템적이고 과학적인 전략 접근은 온데 간데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설비개선이나 노후시설 보강에 투입되는 비용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는 낮은 수준의 절감 방법이 득세하는 현재의 분위기는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발전사의 경우에도 충분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발전소 오버홀 기간을 단축하거나 정비 부문을 직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전력설비의 안정성을 훼손하면서까지 원가 절감에 매달리는 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최근 한전 자회사의 한 발전소가 가동을 두차례나 중단한 것도 크게 보면 원가 절감 ‘맹목주의’가 부른 사고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느 경우에도 목욕물을 버린다고 아이마저 내던져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경영상 어려움을 협력업체에게 떠넘기는 행태에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협력업체도 적자에 허덕이는 한전 그룹사의 사정을 살펴 강도높은 자구 노력을 통해 제품 가격을 낮추거나 공사비를 줄여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한전도 이들 기업이 자발적으로 납품가를 낮추도록 독려하는 것은 바람직한 형태다. 그러나 갑의 우월적 지위로 납품업체에게 제품 가격을 무조건 낮추라고 압력을 행사하는 형국이 돼서는 안된다. 더욱이 공공연하게 특정 협력업체 군을 폭리를 취해온 기업들로 매도하고 적대시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태도다. 강력한 자구노력은 타당하나 그로 인해 협력업체가 부실화되고 고사(枯死)하는 구도로 흐르고 정착되는 것은 삼가야 마땅하다. 어려운 때 일수록 협력업체들을 다독이고 협력을 이끌어 내 원가절감을 꾀하는 것이 미래동력의 자양분을 쌓아나가는 지름길이고 또 그것이 순리다.

이같은 부작용이 불거진 밑바탕에는 눈덩이 처럼 불어나는 한전 그룹사의 적자가 자리한다. 현실적으로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고 구조조정과 원가절감을 통한 경영혁신만으로 한전이 적자를 뛰어넘을 수 없다. 공기업인 한전 그룹사의 적자와 부채는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이대로 방치해서는 안될 일이다. 정부는 경기가 호전되면 전기요금을 올리겠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위기 국면은 장기 레이스이며 거기에 맞게 요금정책도 변화를 가져가야 한다. 원가에 밑도는 불합리한 전기요금으로 인해 적자가 늘어나고 이를 국민의 돈으로 채워가는 방법은 한계가 분명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같은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전기요금을 제 때 현실화하는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전기요금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려 요금인상의 충격을 줄이는 방안도 함께 강구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