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정수 전력연구원 수화력발전연구소장

■어떤 장애물보다 사소한 것들이 우리를

마라톤 대회에 일등을 한 선수에게 물었다. 무엇이 레이스 중에서 가장 힘들었냐고 ? 무더운 날씨도 아니었고, 자신을 계속하여 따라붙는 경쟁자도 아니었으며, 힘든 코스도 아니었다고 한다. 단지 신발 안에 들어간 작은 모래 한 알이었다고 한다.

우리들의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를 위기에 빠지게 하고 어려움을 겪게 하는 것은 아주 많다. 그러나 우리의 죽고 사는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고 아주 사소한 것들이 우리의 행복을 빼앗아 가고 열정을 식게 한다

■잦은 조직개편, 감사와 조사, 자료 요구

최근에 어느 야당 대표가 대덕연구특구를 방문하여 연구기관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연구원들의 열정을 빼앗는 것은 다름 아니고 잦은 조직 개편이라고 뼈있는 말을 하였다. 힘없는 과학기술자들의 위상이 날로 처지고 있다고 자조 섞인 말로 연구원들이 한탄을 한다. 연구기관의 비전이 바뀌고 미션이 크게 바뀌어서 그에 따라 연구기관의 조직을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고, 외부 환경에 의하여 좌지우지되는 경우가 많으니 연구원들이 흥이 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지 모르겠다.

■많은 감사와 조사, 자료요구가 열정을

우리나라에는 감사기능을 가진 기관이 의외로 많다. 감사원이 주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가청렴위에도, 총리실에도, 청와대에도 감사기능이 있다. 2007년에는 전력연구원에 감사 풍년이 들어서 많은 기관들이 다녀갔다. 물론 각자의 기능과 역할이 다르겠지만 감사를 받는 연구원으로서 본연의 업무에 충실하지 못하는 부작용도 있다.

국정조사는 물론이고 각종 자료를 요구받는 경우도 많다. 5년에 한번씩 있는 세무조사도 두 달 이상을 장기간으로 받는데 요구하는 자료가 엄청나게 많다. 연구과제는 어느 한 잣대로 정형화 할 수 없는데도 불구하고 요구하는 자료가 상식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 짜증을 내지 말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다짐에 다짐을 해도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종합지원 부서에서 이런 업무를 총괄적으로 대응하려다 보니 몇 날 몇 밤을 새우면서 자료를 만든 적도 있다. 그것이 연구를 하는데 직접적으로 도움이 된다면 보람이라도 있는데 어찌 보면 소모적인 지원업무라는 것이기에 더욱 속이 상할 때가 많다.

공기업의 연구소이다보니 순수 연구행정이 아닌 일반적인 행정업무도 많다. 그럴 때 마다 줄일 것은 줄이자고 목소리를 높이기는 하지만 피부에 닿도록 감소하는 행정업무는 많지 않다. 이런 것들이 사실 연구의 열정을 빼앗는다.

■인간관계에서 오는 실망감

직장인들의 공통점이 있다.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가 어렵다고 한다. 윗사람과의 관계에서 많은 갈등이 있다. 연구조직에서는 이런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더 많다. 전공이 같으면 어떤 경우에는 평생을 같이 하여야 하니 희망이 없다고도 한다. 그래서 한번 관계가 어긋나면 작은 말 한마디에 갈등의 골이 깊어진다. 연구에 열의를 다할 수 없는 환경이 된다.

이런 인간관계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자세에 대하여 지혜를 알려주는 시가 있다. 오마르 워싱턴의 ‘나는 배웠다’ 라는 시이다. 이러한 어려움을 겪는 동료들에게 가끔씩 이 시를 보내준다.

■사소한 것에서의 탈피, 집중근무시간

사소한 것과 의미 없는 것에 매여서 살다보면 삶이 재미가 없어진다. 계속적으로 우리가 목적의식 없이 뚜렷한 성과 없이 그렇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면 사람은 나태해진다. 이 사사로움으로부터 자유 해야 한다. 여기에 그냥 주저앉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라면 즐겁게 빨리하는 능력과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자신 만의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전력연구원에는 집중근무 시간이 있다. 원장으로부터 모든 직원들이 집중근무 시간을 정해놓고 실시하는데 이 시간에는 자신의 본연의 업무를 하는 것이다. 회의도 이 시간에는 사양하고 전화도 하지 말고 연구부서는 연구에, 기획부서는 기획 업무에 정진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집중근무시간을 제대로 지키기가 어렵다. 워낙 급한 업무가 생기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자신 만의 집중근무시간을 가져야 한다. 퇴근 후에나 주말에 특별히 오버 타임을 하는 것이다.

■사명선언서를 작성하고 다짐하며

연구의 열정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방법이 있다. 자신의 존재이유를 분명히 하고 사명을 다짐하는 것이다. 자신의 사명선언서를 작성하는 것이다. ‘최고 R&D 리더십 과정’에서 작성한 사명선언서는 다음과 같다. ‘전력기술의 세계적인 연구 성과가 나오도록, 연구원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겸손하여서 솔선수범하는 탁월한 리더가 된다.’ 라고 세웠다. 이 사명선언서를 연구수첩과 책상 앞에 적어 놓고 목표가 흔들릴 때마다 자신을 다지고 있다.
‘바라봄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을 저자 본인의 체험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성경에서 말하고 있다. 현실에 너무 매여 있지 말고 미래를 향하여 나가면 언젠가 실제로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우리의 연구 열정을 빼앗는 것들이 우리 주변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다시 한번 자신 만의 시간관리 방법으로 시간을 사용하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자세를 다지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