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태주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장

유비무환(有備無患). 딱 그 말이 생각났다. 임기를 3개월여 남긴 전태주 한수원 고리원자력본부장을 만나고 당장 떠 오른 낱말이 바로 서경(書經)에 나오는 이 성어다. 평소에 준비가 철저하면 후에 근심이 없음을 뜻하는 이 말이 떠 오른 이유는 그가 강렬한 눈빛을 쏘아내며 ‘사람’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원자력계의 숙원을 넘어, 대한민국의 숙원이 된 원자력 플랜트 처녀 수출 ‘성공’의 ‘낭보’는 이르면 이달 말 우리에게 전달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태주 본부장은 바로 지금, 원자력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한 ‘인력풀’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 본부장이 강조한 인력풀은 이름과 직업, 나이, 현재 업무 등을 기록한 ‘파일’이 아니다. 한전, 한수원 등을 비롯해 대기업, 중소기업 등 원자력의 건설과 시운전, 운영, 정비 등에 관계된 모든 경험을 한데 아우르자는 것이다.

전 본부장은 “한수원 안에서도 특정 분야의 전문 경험을 가진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고, 필요한 분야의 전문가를 찾기 위해 안팎으로 전화를 수십 번 해야 찾을 수 있는 실정”이라며 “건설과 시운전, 운영, 정비 등 수많은 원자력의 영역에서 어떤 일을 했고, 무엇을 했는지를, 그리고 가장 자신 있는 분야는 무엇인지 등이 포함된 전문가의 이력과 경험을 통합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가 이 같은 ‘인력풀’을 강조한 것은 앞으로 있을 원자력 플랜트 수출에 대비하자는 뜻에서다. 세계 각국은 지금, 저탄소 녹색성장과 한판 씨름을 벌이고 있다. 그 나라들 대부분이 저탄소 녹색성장의 현실적 대안으로 삼고 있는 것이 바로 원자력발전이다. 자원빈국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이명박 정부는 원자력을 저탄소 녹색성장의 국가 비전을 실현할 핵심으로 꼽고 있으며, 우리나라가 강력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원자력 건설 경험을 염두에 두며, 원자력 플랜트 수출을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원자력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는 온난화 현상의 가속화에 따른 지구의 환경변화로 인한 생존의 문제를 풀 열쇠로, 바로 원자력이 현실적 대안이기 때문이다. IAEA에 따르면 2030년까지 중국과 미국 등 세계 각국은 320여기에 달하는 신규원전을 건설할 전망이다. 전 본부장은 “석유자원의 고갈,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안, 그리고 새로운 아이템으로 떠오른 탄소 거래시장 등 앞으로 다가올 변하지 않을 환경들이 바로 원자력을 다시 보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원자력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그러면서 “조선, 반도체, 자동차 산업이 2만불 시대를 이끌어 왔다면, 3만불 시대를 이끌 성장동력은 바로 원자력 플랜트 수출”이라며 “원자력인은 물론, 대한민국이 하나가 돼 숙원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한다.

세계 각국 원자력발전에 주목…“사람은 없고 일감만 있다”
원자력 플랜트 수출 대비…설계 시공 등 전문가 확보 ‘시급’

우리나라는 정부를 비롯해 원전 산업계가 합심해 원자력플랜트 수출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기술에 의해 시작된 원자력 발전이지만, 세계 유일의 지속적인 원전 건설경험과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운영 능력을 30여년만에 확보한 대한민국이지만, 원천기술 미확보라는 덫에 걸려 세계시장에 진출하지 못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정부를 비롯해 원자력계는 미 확보된 원천기술 자립에 총력을 기울였고, 이를 바탕으로 해외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각고의 벌여왔다. 황무지 벌판에서 외국 기술에 의해 시작된 대한민국 원전 건설의 역사는 ‘원자력맨’들의 피와 땀과 눈물과 열정으로 마침내 100% 기술자립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우방 한수원 건설본부장은 “원전 건설 프로젝트는 그 규모나 기술력 그리고 국민경제와 국민생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할 때 가장 영향력이 있는 프로젝트”라며 “한국표준형원전인 OPR1000 2기를 수출할 경우 직접 수출효과가 약 27억불로 이는 소나타 2.4모델 약 32만대를 수출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라고 늘 강조한 바 있다.

또 “프로젝트 완료 이후 핵연료 및 예비품 수출 등 후속 수출효과가 연간 약 5,000만불에 달하고, 40년 설계수명을 고려하면, 그 가치는 약 20억불에 이른다”며 “고용창출 효과 또한 연간 약 5만 5,000명이나 되는 등 원전 플랜트 수출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엄청나다”고 설명한 바 있다.

세계 각국에서 원자력이 주목을 받지만, 정작 전문가는 부족한 실정이다. 전 본부장이 인력풀을 강조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2030년까지 세계 각국이 300여기가 넘는 신규원전 건설계획을 밝히면서, 일거리는 넘쳐나지만 전문 인력이 부족해 과연 이를 감당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전 본부장은 “현재 국내인력으로 향후 원자력 수출을 감당할 수 있는지, 설계에서부터 기자재 조달, 건설, 운영 등 전 분야에 걸쳐 인력풀을 만들고, 필요인력을 제때에 수급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국내는 물론, 해외 신규 건설시장의 수요에 대비할 수 있다”면서 “세밀한 부분의 조율이 바로 지금, 필요한 때”라고 힘을 줬다.

전 세계가 2030년까지 320여기가 넘는 신규원전을 건설한다고 가정하면, 앞으로 20년 동안 매년 15기 이상이 준공돼야 가능한 수치다. 그렇다면, 5년의 건설 공기를 감안하면, 바로 지금 75기가 동시에 착공해 향후 25년을 건설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수원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신고리 원전의 1기당 건설인력은 1일 기준으로 1,000여명에 달한다. 신고리와 신월성만 놓고 본다면, 현재 국내 원전건설 인력은 1일 기준으로 6,000여명이 투입되고 있다. 여기에 신울진이 착공되면 국내 원전건설 전문인력의 수급 여건을 더욱 나빠지게 된다. 일감은 있지만, 사람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건설이 완료된 원전의 시운전 인력도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신고리1호기만 하더라도 총 4단계의 시운전 과정 중 현재 3단계가 진행중인데, 아직도 70여명에 달하는 인력이 부족한 실정이며, 내년에 4단계에 돌입하면 최대 160여명에 달하는 시운전 인력이 부족해질 형편이다.

몸에 좋은 약은 쓰다. 국내는 물론, 열릴 수밖에 없는 해외 원전시장에 대비하기 위해 전 현직 전문가는 물론, 신규인력 양성 등에 세밀한 돋보기가 바로 지금, 필요하다는 전태주 고리원자력 본부장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