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개발 의욕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특허권 보호가 필요하다는 중소기업의 목소리가 높다. 이런 가운데 한전이 기술료 도입 등 중소기업의 특허권 보장을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이어서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전 구매규격인 지중배전용 조립식맨홀의 특허권(의장등록)을 갖고 있는 A사는 최근 6개월 동안 절치부심(切齒腐心)해 왔다. 문제는 올해 연간단가 계약을 추진하는 입찰과정에서 불거졌다.

A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간단가 계약으로 한전에 해당 제품을 납품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실시된 입찰 과정에서 S사 등 2개사가 입찰에 참여한 가운데 최저가를 쓴 S사가 낙찰되면서 특허분쟁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A사는 S사가 낙찰업체로 선정되자 적격심사가 진행되는 동안, 해당 제품의 특허권리(의장등록)를 주장하기 위해 S사에 내용증명을 보냈고, 동시에 한전에도 관련 공문을 발송했다. 그러나 적격심사에서 S사는 탈락했다.

이런 가운데 한전은 특허권이 있는 자재의 경우, 특혜의혹을 주장하는 관련 업계의 민원 등으로 입찰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입찰을 보류하고 지적재산권 이관 등의 협상을 진행했다. 실제로 S사는 한전에 특허권이 있는 제품의 입찰은 특혜의혹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민원을 제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전은 통상실시권의 무상허여를 골자로 한 기술사용계약서 체결을 통해 특허권 분쟁을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A사는 응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이 수많은 투자비와 시간을 들여 개발한 특허권리를 무상으로 이전한다는데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사는 “기술양수에 따른 양수료의 금액이 크고 작은 문제를 떠나 신제품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과정에서 들인 중소기업의 노력을 한전이 인정해야 한다”며 “특허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한전이라는 공기업에서 구매를 중지한다면, 관련 중기는 연구개발 의지를 상실함은 물론, 국가 전체적으로도 큰 손실”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A사는 그러면서 “국가 전체적으로 경제적, 기술적으로 이익이 될 경우, 특히 공기업에서 중소기업의 권리를 보호해 주는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전은 관련 제품의 연간단가계약을 위한 입찰을 중단했다. 지적재산권 문제가 해결된 후 관련 입찰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활용부서는 입찰 중단에 따라 대용이 가능한 제품으로 대체하거나 현장타설을 통해 해결하도록 전국 사업소에 공문을 하달했다.

A사는 특허권이 있다고 해서 공개입찰을 진행할 수 없다는 한전의 입장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뢰한 결과 통상실시권 이전은 거래상지위남용행위에 해당될 소지가 있고, 입찰 또한 진행할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한전에 조속한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전의 특허팀 담당자도 “특허권이 있다고 해서 한전이 해당 제품을 구매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경쟁업체가 특혜시비를 주장할 경우 막막한 입장”이라고 답변했다.

A사는 “한전이 해당 제품을 쓰게 될 경우, 다른 제품을 쓸 때보다 최대 10억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기술적으로도 훨씬 유용함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말과 함께, 구매규격에서 제외할 수도 있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며 “최근 TDR 등으로 강력한 자구노력을 전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예산절감이 가능한 방안은 놓고, 단지 특허권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배제하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최첨단 배전분야 계측용 장비를 한전의 중소기업 협력연구 개발과제로 개발한 바 있는 B사도 최근 속병을 앓고 있다. 본격적인 적용도 하기 전에 경쟁사가 자사의 기술을 벤치마킹한 제품을 토대로 한전에 구매규격 등록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협력연구개발 과정에서 연구비 분담률에 따라 결과물에 대한 지적재산권을 한전과 분할하고 있는데 보통 7대3 정도의 비율”이라며 “이 협약서로 인해 지적재산권 침해 관련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한전이 동의하지 않으면 할 수 없어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한전에 특정제품을 납품하고 있는 C사는 “한전의 경우, 특허권이 있는 제품은 구매규격으로 채택하지 않고 있다”며 “아무런 대가없이 지적재산권을 허여하는 기술사용계약서를 체결하거나, 특허권리를 숨긴 채 납품할 수밖에 없다”며 “중소기업의 연구개발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관련 제도는 개선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변압기 관련 특허를 보유하고 있는 D업체의 CEO를 역임했던 한 관계자는 최근 한전과의 특허소송에 대비하고 있다. 투자자를 받아 특허를 허여하고 한전에 납품할 날만을 기다렸는데, 누구에게 특허권이 있는가라는 시비에 휘말리면서 납품조차 못하고 있다. 해당 제품은 한전에 의해 예산절감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올 초 김쌍수 한전 사장은 변압기 업계와의 간담회 과정에서 제기된 지적재산권 보호가 필요하다는 업체의 의견에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처럼 지적재산권을 놓고 다양한 형태의 논란이 벌어지자 한전은 3월 특허팀을 발족하고, 대안마련에 들어간 바 있다.

한전 특허팀 관계자는 “특허권 논란과 관련해 기술료 산정 등 다양한 방안을 놓고 대안을 마련중이라며 현재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업체와는 협상을 통해 좋은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특허권에 대해 해당 업체와 기술사용계약서를 통해 ‘무상허여’ 등을 추진해 왔던 한전이 180도 정책을 수정해 기술료 제도 등을 통해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겠다고 나서고 있어 그 결과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