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수원 본사가 이전할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 전경

한수원 본사이전 부지가 경주시 양북면 장항리로 선정된 이후 부지선정을 두고 경주시, 양북면 주민들, 경주시내권 주민들, 한수원노조 등이 서로 다른 입장을 주장하면서 현재까지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백상승 경주시장이 민선4기 3주년 기자회견에서 한수원 본사이전과는 무관한 시내권내 한수원 타운 건설 계획과 한수원 본사의 도심권 이전의 불가능성을 내포하는 발언을 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에 한수원노조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한수원 본사이전을 둘러싼 갈등이 재점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05년 11월 경주시가 압도적인 찬성률로 군산, 영덕, 포항 등의 경쟁지역을 따돌리고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처분시설(이하 방폐장) 부지를 유치하는 날, 경주시의 밤하늘은 수십 발의 축포로 물들었고 경주시청은 잔치 분위기로 떠들썩했다.

19년간 표류하던 방폐장 부지를 유치한 대가로 3,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유치 지원금과 더불어 국내 원자력산업을 책임지고 있는 한수원 본사의 경주이전이라는 보너스까지 받은 경주시는 그야말로 장밋빛 기대에 부풀었다.

방폐장 유치에 따른 지원금과 한수원 본사 이전 효과로 침체된 도시의 경제를 살아나고, 천년문화와 첨단과학이 공존하는 새로운 도시로 변모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경주시와 시민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기대는 생각보다 빨리 깨졌다. 한수원 본사이전 부지를 둘러싼 주민들 간의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장밋빛 기대는 끝없는 불신과 반목으로 변해갔고, 그 골은 깊어만 가 이제는 쉽게 메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한수원 본사이전 부지로 확정된 장항리를 비롯한 양북면 주민들은 약속을 했으니 무슨 일이 있어도 와야 한다는 입장이고, 시내권 주민들은 경주시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한수원 본사가 시내권에 위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한수원노조는 근본적으로 경주로의 본사이전을 반대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전해야 한다면 회사의 미래와 직원들의 복지문제, 경주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시내로 이전 부지를 옮겨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경주시는 백상승 시장이 방폐장 유치전 당시 양북면으로 한수원 본사를 이전하겠다고 약속하고 협조를 구한 탓에, 지금까지 이쪽 눈치 저쪽 눈치 보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전전긍긍하다 종국에는 문제 해결의 책임과 의지조차 내팽겨 치고 나 몰라라 드러누운 듯하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에 배부르고 눈멀어 경주의 진정한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다. 시는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하는 대기업의 이전을 어렵게 유치하고도 적극적인 지원은 고사하고 발목만 잡고 있고, 시장은 시의 발전은 관심 뒷전에 두고 선거에 대비한 무소신의 ‘정치적 입장’ 만을 이어오고 있다.

1일 민선4기 3주년 기자회견에서 밝힌 한수원 본사이전 문제와 관련한 백상승 경주시장의 입장은 경주시의 무책임하고 대책 없는, 의지박약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여겨진다. 그로인해 한수원 본사이전의 당사자 중 하나인 한수원노조의 극단적인 반발을 불러일으켜 본사이전 문제를 풀지 못할 매듭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다.

백 시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경주시가 한수원 본사이전 문제에 관여할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했으며, 아울러 아무도 납득할 수 없는, 선거용 공약(空約) 같은 한수원 타운 건립 계획을 뜬금없이 발표해 분란을 야기했다.

백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양북면 장항리로 옮길 예정인 한수원 본사 이전과 별도로 올해 3분기 안에 한수원 타운 건립을 위한 100만㎡ 규모의 시내권 부지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수원 타운에는 2,000여 가구의 한수원 직원 아파트와 한수원이 추진 중인 컨벤션센터 및 자립형 사립고등학교가 들어서게 되고, 한수원 협력업체인 두산중공업의 원자력 부문도 한수원 타운에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구체적 내용까지 밝혔다.

하지만 백 시장의 한수원 타운 건립 계획에 있어 맹점은 타운 내에 들어설 대상 중에 한수원 본사가 빠져 있다는 것이고, 구체적인 내용 역시 한수원과 두산중공업 등 관련기관과 사전에 전혀 협의된 바 없는 경주시와 백 시장만의 ‘나 홀로’ 계획이라는 점이다.

한수원 노조는 한수원 타운 건립 계획과 관련해 “한수원 본사가 빠진 한수원 타운은 앙꼬 없는 진빵”이라는 말로 계획의 부실을 지적했다. 한영춘 한수원노조 본사본부위원장은 “한수원이 빠진 한수원 타운이 있을 수 없고, 본사 이전과 분리해 생각할 수도 없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한수원 역시 어이없기는 마찬가지란 입장이다. 회사 관계자는 “사전에 한수원과 논의하거나 협의한 적이 전혀 없다”며 “신문을 보고서야 한수원 타운 건립 계획을 알았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이 관계자는 “한수원 본사 직원 다 합해도 600여명에 불과한데 2,000여 가구의 근거가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우연하게도 “본사 없는 한수원 타운은 앙꼬 없는 진빵”이라는 노조 관계자와 같은 말로 어이없음을 표현했다.

한수원 노조가 더 분노한 것은 경주시가 한수원 본사 건물이 완공되기 전까지 폐교로 방치되어 있는 옛 경주여중 건물을 리모델링해 일부라도 이전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한수원 노조는 이에 대해 경주시가 원전노동자를 시베리아 강제이전처럼 폐건물에 이전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경주시의 요구를 중지할 것을 주장했다.

한영춘 위원장은 “에너지 자립이라는 절대적 명제 달성을 목표로 노력해온 원전노동자의 성과와 노고에 격려를 해주지는 못할 방정 지방이전이라는 대못질도 모자라 시베리아 강제이전처럼 폐건물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옛 경주여중으로 강제이전을 요구하고 있는 경주시의 행태에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잘못된 법과 경주시의 특수사정으로 사옥건설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생각지 않고 한수원을 죄인 취급하면서 본사를 방치돼 있는 폐교로 이전하라는 것이 경주시가 생각하는 지방이전 공공기관에 대한 지원방안이냐”고 따졌다.

이와 관련 한수원은 고민으로 머리가 아픈 상황으로 보인다. 폐교를 리모델링하는 데 상당한 비용이 소요되는 데다 수용인력 역시 100여명에 그쳐 별 효용성이 없다는 분석이다. 회사 관계자는 “경주시가 리모델링을 해서 이전을 요구한다면 몰라도 한수원이 직접 리모델링을 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문제가 있다”며 “하지만 향후 경주에서 지속적으로 원전사업을 수행해야 하는 입장에서 경주시와의 관계를 고려해 합리적인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밝혔다.

한수원 입장에서는 폐교 건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월성원전과 신월성 건설사무소의 공간을 활용해 우선 이전하는 인력을 수용하는 방안이 더 효과적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경주시의 요구를 냉정하게 거절할 수도 없고, 노조의 반발도 무시할 없는 처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냉가슴을 앓고 있는 듯하다.

아울러 백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한수원 본사이전 문제에 대해 경주시가 문제 해결에 나설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모든 책임을 한수원에 떠넘겼다. 백 시장은 한수원 본사의 도심권 이전 문제에 대해 “양북면 주민들이 반대하면 어렵다”며 “당사자인 한수원 측에서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내년 선거에 출마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백 시장이 표밭 관리를 위해 ‘정치적 입장’을 선택한 대신 ‘진정한 경주의 발전’은 외면한 것이라는 비판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보궐 선거에서 당선된 정수성 국회의원이 양북면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한수원 본사 도심권 이전문제를 8월말까지 확정하겠다고 밝혀 결과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양북면이 처가인 정 의원은 양북면 주민들과 일주일 정도 같이 생활하면서 한수원 본사이전 문제를 풀어볼 각오인 것으로 알려져 정 의원의 노력이 어떤 결실을 가져올 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